우리나라 성씨(姓氏)제도는 중국(中國)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그 역사(歷史)가 요원(遼遠)하다. 처음에는 왕가(王家)에서만 성(姓)을 가졌으나 공신(功臣), 귀족(貴族) 등 양반계급까지 가문(家門)의 위엄(威嚴)을 보이기 위해서 성(姓)을 쓰기 시작해서 차츰 평민(平民)들도 성을 갖게 되었다.
성씨를 가지게 되는 유형은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사성(賜姓)을 내려 귀족(貴族)과 족장(族長)들이 姓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원주원씨(原州元氏)는 고려통합삼한벽상개국익찬일등공신(高麗統合三韓壁上開國翊贊一等功臣) 정의대부병부령원성백(正議大夫兵部令原城伯) 시조(始祖) 克字猷字 께서 고려태조(高麗太祖)가 삼한(三韓)을 통합(統合)할 때에 병부령(兵部令)으로 태조(太祖)를 도와 크게 공헌(貢獻) 하시어 원성백(原城伯)에 봉(封)해지신 후에 원주(原州)가 원주원씨(原州元氏)의 관향(貫鄕)이 되었다.
고려(高麗)에는 벽상공신(壁上功臣)은 29인이고 그중에서 배현경공만 경주배씨(慶州裵氏)의 중시조(仲始祖)이고 모두 각 姓씨의 시조(始祖)가 된 것으로 보아 고려태조(高麗太祖)로부터 사성(賜姓)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조(始祖) 극유(克字猷字) 할아버님의 선대(先代)는 없다.
원성백(原城伯)에 봉(封)해지시기 전에 원씨(元氏)가 있다면 그는 원주원씨(原州元氏)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동본(同姓同本)은 백대지친(百代之親)이라는데 운곡계나 시중공계가 우리와 시조(始祖)가 같을 것이라 믿으나 그들과 세계(世系)와 소목분별(昭穆分別) 할 문헌(文獻)이 없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시중공계나 운곡계도 克字猷字 할아버님의 후손(後孫)이라는 것을 밝혀줄 후대(後代)가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 지혜(智慧)를 빌려야 할 것 같다.
원주원씨대종회장(原州元氏大宗會長) 원 유 철(元 裕 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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