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벌보(華閥譜)≫를 부정하는 이유
▣≪화벌보(華閥譜)≫를 부정하는 이유
○원성백계(原城伯系)의 일부 종원은 ≪화벌보(華閥譜)≫를 인정한 사실도 부정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화벌보(華閥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화벌보(華閥譜)≫를 인정한다는 것은 족보를 만들 때에 ≪화벌보(華閥譜)≫의 기록을 근거로 했다는 것입니다. 원성백계(原城伯系)의 족보는 ≪화벌보(華閥譜)≫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을뿐더러, ≪화벌보(華閥譜)≫를 인용하여 족보를 만들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원성백계(原城伯系)가 ≪화벌보(華閥譜)≫를 인용하여 족보를 만들었다면, <원극유(元克猷)>의 후손에 시중공계(侍中公系)의 시조인 <원익겸(元益謙)>에 대한 기록이 있어야 될 터인데, 그러하지 못하니 원성백계(原城伯系)는 절대로 ≪화벌보(華閥譜)≫를 인정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화벌보(華閥譜)≫에는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시조(始祖)를 <원극유(元克猷)>로 기록해 두었고, <원익겸(元益謙)>을 <원극유(元克猷)>의 9세손으로 기록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니, 원성백계(原城伯系)는 ≪화벌보(華閥譜)≫를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뒷이야기>
실제로 최근의 족보(族譜)와 대조해 보면, <惟琰, 益謙, 守仁, 成桂, 溫>은 시중공계(侍中公系)와는 완전히 일치하나, <宗順, 召景, 丞吉, 希雲, 雨 烈, 敬錫, 晩淳>을 원성백계(原城伯系)와 맞추어 보면 <원극유(元克猷)>이 외에는 일치하는 <휘(諱)>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원성백계(原城伯系)에서도 인정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원성백계(原城伯系)에서 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이 ≪화벌보(高麗華閥譜)≫는 참고할 가치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뒷이야기>
※혹자는 ≪화벌보(華閥譜)≫의 기록을 근거로 하면 <원익겸(元益謙)>은 <원극유(元克猷)>의 후손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원익겸(元益謙)>은 <원경(元鏡)>의 후손이라는 ≪가승(家乘)≫이 있기 때문에 <원극유(元克猷)>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확실한 근거가 없는 주장이 되고 맙니다.
<출처>
원종석 지음, ≪原州元氏 新始祖論-2009≫, p.65.에서 퍼왔습니다.
元鍾石 著, ≪原州元氏 이야기-2012≫, p.65.에서 퍼왔습니다.
2015년39월 3일
연구자 秘奧 글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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