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백계(原城伯系) 동래설(東來說)-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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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wjwg (원주원가)
원성백계(原城伯系) 동래설(東來說)-④
▣원성백계(原城伯系)는 진원(秦元)이다
진원(秦元)이란 <원극유(元克猷)>의 진한(辰韓)시대 선조(先祖)를 말합니다.
흔히들 토원(土元)이라 알려져 있지만 토원(土元)이라 하면 토박이 원씨(元氏)로써 <원훤(元咺)>의 후손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 되므로 토원(土元)이라 하지 않고 진(秦)나라에서 동래했다고 하여 진원(秦元)이라 합니다.
원씨(元氏)의 성조(姓祖) <원훤(元咺)>의 후손이 두 번에 걸쳐 우리나라로 동래(東來)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진원(秦元)의 동래설(東來說)』이고 두 번째가 『당원(唐元)의 동래설(東來說)』입니다.
▣진원(秦元)의 동래설(東來說)
원경(元鏡)이 팔학사(八學士)로 동래(東來)하여 원주(原州) 지방(地方)에 입향(入鄕)하였을 때에는 이미 원씨(元氏)들이 토착호족(土着豪族)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 들은 『토박이 원씨(元氏)』이니 『토원(土元)』이라 합니다.
이들은 진(秦)나라에서 진시황(秦始皇)이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을 일으켜 선비들을 생매장(生埋葬)하려고 하므로 이를 피하려고 진한(辰韓)으로 동래(東來)해온 진(秦)나라 원씨(元氏)이므로 『진원(秦元)』이라고 함이 바릅니다.
이 토원(土元)은 진(秦)나라에서 동래(東來)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진시황(秦始皇)이 처음으로 천하(天下)를 통일(統一)하고 중앙집권(中央集權)을 강화(强化)하기 위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BC 213年」 사건(事件)을 일으켰으니, 이를 피하여 진(秦)나라 일부 선비들이 도망하여 진한(辰韓)으로 동래(東來)하였다고 합니다.
『《삼한기(三韓記)》에 가로되 진(秦)나라 사람이 한(韓)나라로 들어오니 한(韓)나라에서 동쪽 지경(地境)을 나누어주었고, 여기가 진한(辰韓)이니, 12國을 통치하였고, 원주(原州)도 여기에 속한 골이다. 원씨(元氏) 또한 이 시기에 난리(亂離)를 피하여 동래(東來)하여 왔다고 한다. 그 분이 시조(始祖)임에는 분명(分明)하나 안타깝게도 그 분이 누구인지는 전해오지 아니한다.』
※耘谷系 族譜, 《丁亥譜-1767》
<뒷이야기>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양원(兩元)』이라면 흔히들 쉽게 『당원(唐元)과 토원(土元)』이라고 말하지만,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양원(兩元)이란 『진원(秦元)과 당원(唐元)』이라고 해야 바르다고 봅니다.
※元鍾石 著, ≪原州元氏源史-2015≫에서 퍼왔습니다.
2015년 6월 12일
秘奧 元鍾石 글올림. (℡.010-6517-1691. 053-313-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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